2026년 4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관제실. 엔지니어들은 신호 하나를 우주로 전송했다. 그 신호가 목적지에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3시간. 지구에서 약 25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탐사선, 보이저 1호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LECP, 꺼라."
- 보이저 1호가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 RTG 핵전지란 무엇이고, 왜 전력이 줄어드는가
- 이번에 꺼진 LECP 장비가 49년간 측정한 것들
- 현재 남은 장비 2개와 보이저의 남은 시간
- 보이저가 인류에게 남긴 것,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
1. 신호가 도달하는 데 23시간 — 보이저 1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숫자를 한 번 느껴보자. 빛의 속도로 23시간.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약 65,000배. 인간의 감각으로는 그냥 '아주 멀다' 정도로 뭉개지는 거리다. 그 먼 곳에서 보이저 1호는 지금도 시속 약 6만 1,500킬로미터(초속 17km)로 날아가고 있다.
이 속도가 감이 안 잡히는가. 서울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14시간 걸리는 거리(약 11,000km)를 보이저 1호는 약 10분에 주파한다. 총알보다 20배, 여객기보다 70배 빠르다. 그리고 그 속도로 49년째,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날아가고 있다.
그 49년의 여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2012년 8월 25일이었다. 이날 보이저 1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태양권계면(Heliopause)을 돌파했다. 태양에서 뿜어져 나온 태양풍이 더 이상 닿지 못하는 경계선. 그 너머는 '성간우주(Interstellar Space)'다. 다른 별들 사이의 빈 공간, 희박한 가스와 은하우주선이 흐르는 그 영역으로 보이저 1호는 홀로 진입했다. NASA가 이 사실을 공식 발표한 건 1년 뒤인 2013년 9월이었다. 인류가 "경계를 넘었다"고 확신하는 데까지, 1년 치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야 했던 것이다.
1-1. 쌍둥이 탐사선, 보이저 2호는 어디에 있나
보이저 1호 혼자만 날아간 건 아니다. 16일 먼저 발사된 쌍둥이 탐사선, 보이저 2호가 있다. 보이저 2호는 보이저 1호보다 6년 늦은 2018년 11월 5일에 태양권계면을 넘었고, 현재 지구에서 약 210억 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두 탐사선의 진행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보이저 1호는 북쪽으로 35도, 보이저 2호는 남쪽으로 48도. 마치 태양계라는 기포에 두 개의 바늘구멍을 뚫고 나간 것 같다. 덕분에 인류는 지금 성간우주를 두 지점에서 동시에 측정하고 있다. 이 두 탐사선이 없으면, 그 영역에는 인간의 눈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지금, 두 탐사선의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전력.
2. 핵전지가 식어간다 — RTG와 전력의 줄다리기
보이저 1호에는 태양광 패널이 없다. 태양에서 너무 멀리 있으니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탑재된 것이 방사성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RTG)다. 플루토늄-238이 자연 붕괴하면서 내뿜는 열을 전기로 바꾸는 장치다. 연료 주입도, 정비도 필요 없다. 그냥 알아서 식어간다. 49년 동안 보이저를 살려둔 심장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플루토늄-238의 반감기는 약 87.7년. 열전대 소자 자체도 낡는다. 둘이 겹쳐 RTG는 매년 약 4와트씩 출력이 줄어든다. 발사 당시 470와트였던 심장 박동이 2022년에는 약 220와트로, 2026년 현재는 약 200~210와트 수준까지 내려왔다. 가정용 냉장고 한 대가 150~200와트를 쓴다. 인류가 만든 가장 먼 탐사선을 움직이는 전력이, 딱 냉장고 한 대 분량이다.
2-1. 전력 절약의 역사 — NASA는 어떻게 버텨왔나
원래 설계된 수명은 고작 5년이었다. 목성과 토성을 지나면 임무 끝. 하지만 보이저는 계속 살아남았고, NASA는 1980년대 후반부터 '어떻게 더 오래 쓸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답은 단순했다. 덜 쓰자.
먼저 이미 임무를 마친 과학 장비들을 하나씩 껐다. 카메라도 껐다 — 1990년 2월 14일 그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을 마지막으로, 보이저의 카메라는 다시는 켜지지 않았다. 히터도 꺼갔다. 전압도 낮췄다. 하나, 또 하나, 그렇게 35년이 흘렀다. 원래 탑재된 과학 장비 총 10개 중, 2026년 봄까지 이미 7개가 꺼진 상태였다. 남은 건 LECP를 포함해 단 3개뿐이었다.
2-2. 2월의 경고, 그리고 49시간의 기다림
매년 4와트씩 '예정대로' 줄어드는 건 견딜 수 있다. JPL 팀을 긴장시키는 건 '예상 밖'의 순간이다. 그 순간이 2026년 2월에 왔다.
안테나를 지구 쪽으로 미세하게 돌리는 자세 제어 기동, 이른바 '롤 기동' 직후였다. 전력 수치가 뚝 떨어졌다. 자동 저전압 차단 시스템이 작동하기 직전이었다. 이 시스템이 한 번 발동하면 탐사선은 스스로 부품을 끄기 시작한다. 그리고 250억 km 밖에서 꺼진 부품을 다시 깨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제권을 빼앗기면 끝이다.
그래서 JPL은 결정했다. 탐사선이 스스로 꺼지기 전에, 사람이 먼저 끈다. 2026년 4월 17일, 꺼야 할 장비로 저에너지 하전 입자 분석기(LECP)가 선택됐다. 명령어는 짧았다. "LECP, 꺼라." 하지만 그 명령이 실제로 실행되기까지의 시간은 짧지 않았다.
편도로 23시간. 탐사선이 장비를 끄는 데 약 3시간 15분. 그리고 "꺼졌다"는 확인 신호가 지구로 돌아오는 데 다시 23시간. 엔지니어가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총 약 49시간 15분. 꼬박 이틀이다. 그 이틀 동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명령은 이미 빛의 속도로 떠나버렸고, 취소하는 신호를 보낸다 해도 그것 또한 23시간이 걸려야 도착한다.
보이저를 다루는 엔지니어들이 명령 하나에 수개월을 시뮬레이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50억 km 밖의 탐사선과 대화한다는 건, 매 문장마다 이틀씩 끊어가며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다.
3. LECP는 49년간 무엇을 보고 있었나
이번에 꺼진 LECP는 어떤 장비였을까. 이름은 거창하지만 역할은 명확하다.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이온·전자·우주선(宇宙線) 같은 '저에너지 하전 입자'를 하나하나 센다. 몇 개가, 어느 방향에서, 어떤 에너지로 날아오는지를 본다. 단순히 숫자만 세는 게 아니라, 그 숫자의 변화를 읽어 우주 환경의 '결'을 그려내는 장비다.
3-1. 보이저가 경계를 넘는 순간을 본 장비
LECP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은 2012년 8월 25일의 그 관측이었다. 그날을 전후로 LECP가 세던 숫자들이 갑자기 이상하게 움직였다. 태양에서 날아오는 입자는 뚝 끊기듯 줄고, 반대로 먼 별들 사이에서 온 은하우주선의 유입이 급격히 치솟았다. 경계선 하나를 넘은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데이터를 꼬박 1년 동안 들여다봤다. 그리고 2013년 9월, NASA는 공식 발표했다. "보이저 1호는 태양권계면을 통과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간우주에 진입한 탐사선이라는 선언. 그 선언을 가능하게 한 바로 그 '숫자의 변곡점'을, LECP가 49년 중 바로 그 순간에 꼼꼼히 세고 있었다.
3-2. 닫힌 창문 — LECP 종료가 의미하는 것
그래서 LECP가 꺼졌다는 건 단순히 장비 하나가 비활성화된 것이 아니다. 인류가 성간우주의 입자를 직접 셀 수 있는 유일한 창문 하나가 닫힌 것이다. 허블도, 제임스 웹도, 그 어떤 지상 망원경도 이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이건 '멀리서 보는 사진'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세는 숫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JPL이 LECP를 최대한 늦게까지 켜두려 애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LECP가 보낸 데이터로 쓰인 논문은 수백 편. 지금도 새로운 분석이 계속 진행 중이다. 그러나 2026년 4월 17일 이후로, 이 숫자의 실시간 업데이트는 멈췄다. 남은 LECP 모터 하나가 0.5와트로 돌고 있다 — 언젠가 전력이 회복되면 다시 켤 수 있도록, 가장 작은 불빛 하나만 남겨둔 것이다.
4. 이제 남은 건 단 2개 — 그리고 '빅뱅' 계획
LECP가 꺼진 지금, 보이저 1호에서 작동 중인 과학 장비는 단 두 개다. 플라즈마 파동 탐지기(PWS)와 자기장 측정기(MAG). 이 두 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에게 성간우주의 소식을 보내오고 있다. 그리고 두 장비는 지난 14년간 꽤 충격적인 소식들을 지구에 전해왔다.
4-1. MAG와 PWS가 뒤집은 상식
보이저 1호가 태양권계면을 넘기 직전, 과학자들은 이렇게 예측했다. "경계를 지나면 자기장 방향이 확 틀어질 것이다." 태양의 자기장과 별들 사이 자기장이 같은 방향일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데 MAG가 보낸 데이터는 달랐다. 경계 안과 밖의 자기장 방향이 거의 똑같았다. 수십 년 동안 당연하게 가르쳐오던 교과서가 한순간에 틀리게 된 것이다.
PWS는 또 다른 충격을 안겨줬다. 플라즈마 진동 주파수로 주변 밀도를 역산하는 이 장비가, 성간우주의 플라즈마 밀도가 태양권 내부보다 약 40배 높다고 보고한 것이다. 별 사이 공간은 텅 빈 곳이 아니라, 오히려 태양권보다 '조밀한' 환경이었다. 보이저 1호가 성간우주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최종 확정 지은 것도 바로 이 밀도 측정이었다.
4-2. 2030년대까지 살아남기 위한 '빅뱅' 작전
이 두 장비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두기 위해, JPL은 지금 대담한 계획을 준비 중이다. 코드명 '빅뱅(Big Bang)'. 오래되고 전력 소모가 큰 부품들을 저전력 부품으로 한꺼번에 교체하는 작전이다. 하나씩 바꿔 안정성을 확인할 시간이 없다. 단번에 바꾼다. 그래서 '빅뱅'이다.
첫 시험은 2026년 5~6월, 지구에서 더 가까운 보이저 2호에서 먼저 진행된다. 성공하면 같은 해 7월 이후 보이저 1호에도 적용된다. 목표는 하나. 두 탐사선 모두 2030년대 초반까지 최소 한 개 이상의 과학 장비를 계속 가동시키는 것이다.
빅뱅이 진행되는 사이, 보이저 1호는 또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를 향해 간다. 2026년 11월 15일, 보이저 1호는 지구로부터 정확히 1광일(Light-Day) 거리에 도달한다. 빛이 꼬박 24시간을 달려야 닿는 거리. 인간이 만든 물체가 처음으로 도달하는 1광일 지점이다. 그 이후로는 한 번의 명령과 응답에 최소 48시간이 걸린다.
5. 보이저가 인류에게 남긴 것
이쯤에서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보자. 애초에 인류는 왜 이 탐사선을 이렇게까지 오래 붙잡고 있는 걸까. 답을 찾으려면 49년을 되감아야 한다.
1977년 9월 5일 발사 당시, 보이저 1호의 예정 수명은 고작 5년이었다. 목성, 토성, 그리고 끝. 그런데 NASA는 출발 전 기묘한 물건 하나를 이 탐사선에 실었다. 황금 레코드판이다. 지구의 소리, 55개 언어의 인사말, 바흐의 음악, 세계 각지의 전통 노래가 담겨 있다. 언젠가 외계 문명이 이걸 발견한다면, 지구라는 행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도록. 과학 탐사선에 "혹시 누가 찾으면 읽어달라"는 편지를 끼워넣은 것이다.
1979년 3월, 보이저 1호는 목성을 지났다. 대기를 휘감는 거대한 폭풍,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 — 위성 '이오'에서 타오르는 활화산이었다. 지구 밖에 활화산이 있으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1980년 11월, 토성을 지나며 보이저는 고리의 복잡한 세부 구조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교과서가 몇 챕터씩 새로 쓰였다.
그리고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는 태양에서 약 60억 km 떨어진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찍었다.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온 작고 창백한 푸른 점. 이 촬영을 NASA에 끈질기게 제안한 사람이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었다. 그는 이 사진을 보고 썼다. "저 점이 여기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그 한 장을 마지막으로 보이저의 카메라는 영원히 꺼졌다. 전력을 아끼기 위해.
그리고 바로 이 순간에도, JPL의 엔지니어들은 편도 23시간의 지연을 감수하며 남은 두 장비의 한 와트를 계산하고 있다. 그들이 지키는 건 낡은 탐사선 하나가 아니다. 인류의 가장 먼 눈이다. 다음 눈이 저 자리에 도착하려면, 빨라야 2040년대다.
- 보이저 1호는 현재 지구에서 250억 km 떨어진 성간우주를 시속 약 6만 1,500km(초속 17km)로 비행 중이다
- 핵전지(RTG) 출력은 매년 약 4W씩 감소하여 2022년 약 220W, 2026년 현재 약 200~210W 수준으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자세 제어 기동 중 예기치 않은 전력 급감이 발생했고, 이에 대응해 4월 17일 LECP 장비가 선제적으로 비활성화됐다
- 이로써 남은 작동 장비는 플라즈마 파동 탐지기(PWS)와 자기장 측정기(MAG) 단 2개
- LECP는 2012년 8월 25일 태양권계면 통과 확인 등 성간우주 입자 환경 연구의 핵심 데이터를 49년간 제공해 왔다
- JPL은 '빅뱅' 전력 절감 계획을 통해 2030년대 초반까지 임무 연장을 목표로 하며, LECP 모터는 0.5W로 유지 중(재가동 가능성 보존)
- 2026년 11월 15일, 보이저 1호는 인류 최초로 지구에서 1광일 거리에 도달할 예정이다
- 보이저 1호의 전력 감소는 기기 결함이 아니라 설계 당시부터 예정된 RTG의 자연 붕괴 현상이다
- 장비 비활성화는 탐사선 고장이 아니라, 제한된 전력 내에서 최대 임무 기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다
- 보이저 1호는 여전히 정상 작동 중이며, 현재도 데이터를 지구로 전송하고 있다




